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투안 공베르 (문단 편집) == 신학교 교수신부 및 수녀원 지도신부 == 1900년 [[안성시|안성]]에 부임한 앙투안 신부는, 수많은 신자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1932년 안성을 떠나 [[서울]]의 [[신학과/가톨릭|신학교]]에 부임하게 된다. 당시 서울 동성상업학교[* 현 [[동성중학교(서울)|동성중학교]]ㆍ[[동성고등학교]].]는 갑조([[甲]][[組]])와 을조([[乙]]組)로 나뉘어 있었는데, 갑조는 일반학급이고 을조는 [[신부(성직자)|신부]]를 양성하는 소신학교[* 중고등학교 과정의 가톨릭 신학교. 오늘날은 폐지되었다. 대신 [[교구]]와 [[수도회]]마다 예비신학생 모임이 있고, 이 모임에 성실히 출석해야 [[신학과/가톨릭|가톨릭 신학대학]](대신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였다. 앙투안 신부는 을조에서 신학생들을 지도하게 된다. 당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신학생이었는데, 소년 김수환은 아직 [[사제]] 성소([[聖]][[召]])[* ‘[[야훼|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뜻. 넓은 의미로는 다양한 삶의 방식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하며, 특별히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사제]]나 [[수도자]]로의 부르심’을 뜻한다.]에 대해 분명히 확신하지 못하여 갈등하고 있었고, 앙투안 신부에게 “저는 신학교에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상담하기도 했다. 이에 앙투안 신부는 '''“신부는 자신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되기 싫다고 해서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며 김수환 신학생을 격려해주었고, 김수환은 무사히 대신학교까지 마치고 신부가 되었다. 또한 앙투안 신부는 [[가르멜회|가르멜 봉쇄수녀원]] 및 [[http://www.holyfamily.or.kr|성가소비녀(聖家小婢女會)]]의 지도신부 일도 맡았다. 성가소비녀회는 앙투안 신부와 마찬가지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사제이자 [[혜화동 성당]] 제4대 주임신부를 지낸 피에르 생제르(Pierre Singer, 1910-1992)[* 한국 이름 성재덕([[成]][[載]][[德]])] 신부가 1943년 12월 24일 창설한 [[수녀회]]로, 앙투안 신부는 피에르 신부와 함께 성가소비녀회의 회칙을 제정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